넷플릭스 [맹크] ‘시민케인’의 작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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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올드먼이 연기하는 맹크(허먼 J. 맹키위츠).. 영화의 주인공이죠. 본인의 경험담을 토대로 <시민 케인>의 각본을 썼고, 또다른 걸작 <오즈의 마법사>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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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버크가 연기하는 오슨 웰스… <시민 케인>의 감독이자 오만한 천재로 할리우드에서 미움을 산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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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댄스가 연기하는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당시 거대 신문사, 방송사를 손에 쥔 언론계의 거물이자 재벌. 황색 저널리즘의 선구자였다고 합니다. <시민 케인>의 주인공 케인의 모델이 됐다고 하죠. 우리나라로 치면 모 거대 신문사 사주, 밤의 대통령쯤 불리는 인물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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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연기하는 ‘마리온 데이비스’. 당시 할리우드의 스타 배우인 동시에 자기보다 34살 많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정부로서 유명했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맹크>와 관련된 위키백과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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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J. 맹키위츠(맹크)는 오슨 웰스와 협력해 <시민 케인>의 각본을 쓴 것으로 유명한데, 그들은 아카데미 각본상을 공동으로 수상했지만, 나중에 누가 무엇을 썼는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은 1971년에 쓴 에세이에서 <시민 케인>의 각본은 맹키위츠가 전담했다고 간주했는데, 그 에세이는 지금도 큰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시민 케인>이라는 영화 자체의 중요성 때문에 실제 각본가가 누구인지가 논란이 되지 않을 수 없는데, 영화가 신문사 사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삶을 극화했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한편 영화 연구가 데이빗 톰슨은 “(시민 케인) 각본의 아이디어, 형태, 날카로운 언어에 허먼 맹키위츠의 공로가 있었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고 썼다.

맹키위츠의 전기 작가 리처드 메리먼은 <시민 케인>의 각본가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쟁은 영화를 홍보한 방식 등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됐음을 지적했다. <시민 케인>이 1941년 5월 1일, 다른 대도시들에 이어서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상영되었을 때, 홍보 전단지에는 오슨 웰스의 사진과 더불어 “(오슨 웰스) 혼자서 감독, 연기, 각본을 담당”했다고 적혀있었다. 훗날 맹키위츠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오슨이 자신의 걸작을 어떻게 썼는지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례하게 떠들어대는 것이 특히나 화가 납니다. 실제로는 카메라가 돌아가기 전까지 아무런 각본도 없었고, 내가 쓰지 않은 건 단 한 줄도 없었거든요.”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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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학자 오토 프리드리히에 따르면 크레딧 문제가 공식적으로 해결되기 전, 오슨 웰스는 루엘라 파슨스의 칼럼을 통해 자신이 <시민 케인>의 각본을 썼다고 언급했다. 이것을 보고 언짢아진 맹키위츠는 영화작가조합을 찾아가 자신이 <시민 케인>의 원작자라고 선언했다.

나중에 오슨 웰스는 애초부터 맹키위츠와 공동 각본가로 크레딧에 표기할 계획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맹키위츠는 오슨 웰스가 1만 달러를 보너스로 줄 테니 자신이 각본을 다 쓴 것으로 해달라고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영화작가조합은 결국 맹키위츠의 이름이 먼저 나오고 오슨 웰스의 이름이 다음에 나오는 형태의 공동 크레딧을 승인했다. 얼마 뒤 오슨 웰스는 양측의 엇갈린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맙소사, 내가 그 사람(맹키위츠)을 아끼지 않았다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던 그를 증오했을 겁니다. 내가 그에게 돈을 주고 그의 이름을 빼달라고 했다는 소리를 되풀이 하면서 난리를 치고 다녔겠죠.”

허스트의 이너서클

맹키위츠는 할리우드 각본가 찰스 레더러와 절친한 사이가 됐는데, 레더러는 당시 할리우드 여배우 마리온 데이비스의 조카였다. 레더러는 할리우드를 자주 드나들면서 성장했고, 특히 산 시메온에 있는 저택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그곳은 마리온 데이비스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정부로서 안주인 행세를 하던 곳이었다. 1930년대 초, 맹키위츠는 허스트의 추종자 중 한 사람이 되어, 산 시메온 저택의 주말 파티에 종종 초대되었다.

찰스 레더러를 통해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와 친분을 쌓은 맹키위츠는, 허스트가 속임수에 능하고, 타산적이며, 권모술수에 능한 인물이라고 여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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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맹키위츠는 운전 사고로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다. 그가 입원해 있는 동안 오슨 웰스가 병문안을 왔는데, 웰스는 일찍이 맹키위츠와 알고 지내면서 그의 재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몇 달 동안 맹키위츠와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게 됐고 그로 인해 <시민 케인>이 탄생하게 됐다.

오슨 웰스는 <시민 케인>이 허스트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고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허스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시민 케인>이 공개된 후, 허스트는 웰스와 맹키위츠에게 복수하려고 오랫동안 벼르게 됐다.

<시민 케인>의 특정 요소들은 맹키위츠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들에서 가져온 것이다. <시민 케인> 속 주요 소품인 ‘로즈버드’ 썰매는 그가 아끼던 자전거가 도난당한 일화에서 비롯됐다. 또 영화 속 케인의 연설문 중 일부는 허스트의 연설문을 거의 그대로 베꼈다. 가장 사적인 요소로서 허스트가 자신의 정부 마리온 데이비스의 클리토리스를 ‘로즈버드’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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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트가 <시민 케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허스트가 가진 광범위한 규모의 신문 유통망, 방송사들이 영화에 대한 모든 언급을 차단하고, 광고도 거절하였으며, 일부 허스트의 직원들이 영화의 배급을 막거나 제한하기 위해 막후에서 작업했다는 사실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시민 케인>은 각본상을 포함해 아카데미상의 거의 모든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리처드 메리먼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할리우드리포터지가 <시민 케인>이 12개 부문 중 10개 부문에서 수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지만, 허먼 맹키위츠는 수상할 기회가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당시 허먼은 여전히 허스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또 할리우드에서는 요란한 천재로 살아오면서 타협하지 않는 건방진 사내로 인식돼온 오슨 웰스에 대해 적개심과 불신감을 갖고 있었다.”

오슨 웰스도 맹키위츠도 당시 라디오로 생방송된 아카데미 시상식 만찬에 불참했다. 대신 웰스는 남미에서 영화 <It’s All True>를 촬영하고 있었다. 허먼은 초대를 거절했는데, 그의 아내 사라에 따르면 “창피를 당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리처드 메리먼은 그날 시상식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시상식날 밤, 허먼은 라디오를 켜고 침실 의자에 앉았다. 사라는 침대에 누웠다. 각본상 부문이 발표되려 하자 허먼은 라디오를 듣지 않는 척했다. 갑자기 라디오에서 반쯤 소리를 지르듯이 ‘허먼 J. 맹키위츠’라는 말이 들려왔다. 공동작가인 오슨 웰스의 이름은 “맹크! 맹크! 지금 어디 있는 거야?”라고 외치는 청중들의 목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조지 셰퍼(<시민 케인>의 프로듀서)가 맹키위츠의 각본상을 대신 받았다. 리처드 메리먼과 폴린 카엘은 그 수상에 대해 “아카데미 회원들은 비록 자신들이 배척한 오슨 웰스도 공동수상하긴 했지만, 자기네 사람이자 실패한 천재, 미치광이이자 무모한 맹크가 수상해서 기분이 좋았을 것”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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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시민 케인>은…

리처드 메리먼은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시민 케인>은 압도적으로 오슨 웰스의 영화다. 그만의 강렬한 마법으로 빚어낸 작품이다. 허먼 맹키위츠는 오슨 웰스가 발굴해낸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자기 파괴적인 두 인물들이 서로의 도움으로 하나의 걸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웰스가 없었다면 허먼에게 최고의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맹키위츠가 없었다면 웰스가 본인의 천재성을 확인시켜줄 완벽한 순간에 완벽한 아이디어는 없었을 것이다. <시민 케인>의 각본은 진정으로 창조적인 공동작품으로, 두 사람 개개인이 가진 재능의 합계보다 더 위대한 협업이었다.”